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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덜란드로 온 까닭은?


저는 현재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대학교에서 바이오메디컬 사이언스 학사를 공부하고 있는 백수민입니다. 저는 네덜란드 유학을 결정하기 전에 대한민국과 싱가포르에서 공부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아래에 저의 경험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2017 2 싱가포르의 수능 GCE Advance Level 점수에 맞춰 싱가포르의 대학교들에 원서를 넣었고, 합격 소식들이 들려왔다. 하지만 인체의 신비를 파헤치겠노라 마음을 먹은 내가 기다린 학과들이 아닌 경영학과와 환경공학부에서 소식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대학교는 원하는 공부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 나는 그때부터 빠르게 해외 대학교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유학 비용이 드는 미국, 영국, 호주 대학교들은 일치감치 마음을 접었고, 나만의 ‘가성비 유학’을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학비와 생활비가 터무니없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명성 높은 대학교들과 연구소들이 즐비한 곳, 서유럽이 눈에 띄였다. 나의 유학 준비 소식을 듣고, 주위 어른들이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주로 ‘영,미국도 아닌 유럽을 가느냐’, ‘아시아 제일의 대학을 놔두고 어딜 가느냐’ 등등의 이유였다. 말들에 동화돼서 점점 유학을 포기하려는 찰나, 어머니의 흘러가는 한마디가 있었다. “원래 중세 유럽엔 네덜란드의 과학이 가장 앞섰었어. 그리고 수많은 철학자를 배출했지. 이렇게 깊이 사고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나라도 있대.” 그때부터 네덜란드에 꽂혀서 밤낮없이 정보를 찾았다. 20 살의 나에겐 대학교를 가는것만큼 중요한 것을 없었으니까. 원래 중세의 네덜란드가 무역과 렌즈를 만드는 기술로 유명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알수록 대단한 나라였다. 미술, 과학, 경제, 인권 많은 분야에서 깊은 역사와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였다. 무엇보다 내가 원했던 조건에 대부분 부합하는 학과와 학교가 있었다. 마스트리흐트 대학교의 바이오메디컬 학과. 알아보니 바이오메디컬 분야에서 많은 도전적인 실험과 성공을 맛본 학교였다. 특히나 대학교에서 추진했던 배양육에 관한 실험은 2013 부터 꾸준히 한국 뉴스에도 소개가 되고있다. ‘아 여기야!’ 확신이 이후부턴 학교 웹사이트를 정독하면서 눈코 없이 원서 준비를 했다. 원서 마감까지 겨우 5 남은 시점이었다. 빠듯하게 기한에 맞춰 원서를 넣은 후, 본격적으로 부모님의 둥지를 떠나 미지의 나라로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네덜란드 유학에 관한 정보도, 네덜란드의 삶에 관한 정보도 턱없이 부족했다. 인터넷엔 오로지 네덜란드에 관한 환상들 뿐이였다. 아이들이 살기 가장 좋은 나라, 남녀평등을 위해 힘쓰는 나라, 고흐의 나라. 하지만 정작 나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착을 위한 팁이나 기숙사를 예약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찾는 방법, 은행 계좌 여는 방법에 관한 정보는 적었다. 특히나 마스트리흐트라는 네덜란드의 최남단의 작은 도시에 관한 정보는 씻고 찾아볼 없었다. 정보 부족은 나에게 미래에 대한 불확실을 기반한 크나큰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두려움으로 인해 네덜란드로 떠나는 날까지 며칠 밤을 눈물로 지새웠는지 부모님조차 모를 것이다. 어찌 됐던 출국 날짜은 다가왔고, 여전히 네덜란드에 집은 없었고, 겨우 이민 가방 두개와, 녹색 여권 그리고 7 8 일짜리 에어비앤비 예약확인증만을 들고 KLM 올랐다. 네덜란드에 도착하고 동안은 학교를 다니는 와중에 비자, 학교 행정정리, 더치은행 계좌 개설, 찾기 등의 끊임없이 생기는 퀘스트 때문에 눈코 없이 바빴다. 모든 것이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고, 하나라도 까딱 잘못하면 바로 싸서 귀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른의 도움 없이 관공서와 은행과 학교와의 씨름은 20 살짜리 사회 새내기에겐 매일이 사자 입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있는 같은 착각을 들게 하였다. 이때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방법은 타임라인 작성이었다. A4 종이에 언제 무엇을 어디에 언제까지 제출해야 하는지 써넣었다. 그리고 매일 해야 일을 했고 미래에 해결해야 하는 일은 미리 걱정하지 않고 잠에 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결국 네덜란드에 남아 있기 위한 행정처리는 마무리됐고, 그제야 네덜란드라는 기회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스트리흐트 대학교는 네덜란드 내에서 PBL (Problem Based Learning)교육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PBL 시스템이란 전통적인 강의 위주, 교수 위주의 수업방식이 아니라, 소규모 그룹 토론 위주의 교육방식이다. 네덜란드 내에서도 모든 수업에 시스템을 적용한 학교는 유일하다고 들었다.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다. 지도교수도 없고 강의도 거의 없고, 교수들이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교수는 그저 방향 제시만 하고, 사례연구를 읽으면서 마주친 질문들은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전문 서적을 읽고, 각자 나름의 답을 찾아서 튜토리얼에서 나눠야 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무엇이 답인지 어떤 것도 쉽게 알려주지 않았다. 처음에 교육에 불만이 많았던 동기들과 나는 점점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방법,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방법, 논문 읽는 방법, 같이 협력하는 방법, 중요 정보들을 정보의 홍수 속에서 구별하는 방법,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방법들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이제는 차라리 대학교에 입학한 것이 나에겐 메리트라고 생각한다. 전문지식은 모든 대학교가 가르치지만, 과학자로써 필요한 능력들을 가르치는 대학교는 많지 않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마스트리흐트 대학교의 엄청난 교육 노하우고 학교 졸업생들의 인생 자산이다.

네덜란드가 나의 유럽 경험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워낙에 개방적인 나라이기 때문에 외국인에 대한 포용력이 비교적 높다. 그리고 적당히 칠(chill)하면서도 각자의 전문분야에 자부심이 강하기 때문에 일과 개인의 삶에 밸런스가 이루어 나라다. 본국에서 그렇게 추구하는 전설의 “워라밸”을 직접 보고 몸소 실천할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기회라는 확신이 섰을 부딪히는 추천한다. 물론 많은 힘이 것이고, 두렵고, 외롭고 결국 포기를 수도 있다 하지만 젊음을 밑천으로 번쯤은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결국엔 정답은 없고, 이모저모 각자의 모양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게 된다. 네덜란드가 각자에게 주는 교훈을 맛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