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PH_Master

네덜란드라는 선물




“언제나 속에 함께 존재하던 엄마가 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밖으로 서서히 멀어져갔다. 그리고 어떠한 접점도 없던 네덜란드와 이곳 사람들이 속으로 들어왔다.” 올해를 맞이하며 일기의 문장이다. 나는 지금 내가 바라던 대로, 암스테르담 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유학과 해외 취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오스틴 교환학생 때부터지만 한국에서 학사 과정을 마친 광고 회사에 입사했다. 따뜻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업무는 내게 맞지 않았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는 유방암 그리고 뇌종양을 차례로 진단 받게 되었다. 개두술 흔적만큼이나 모든 아프고 무서운 겨울을 지나 막힐 무더운 여름이 오고, 그렇게 다시 벚꽃이 피던 엄마는 영영 작별 인사를 했다.

내가 떠나면 이곳에 남게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될까, 나는

과연 외국에서 딛고 우리집이라고 부를 있는 공간을 찾을 있을까,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은 결국 무엇일까.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지만, 열심히 준비한 끝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네덜란드를 선택하게 어느 정도의 계획과 어느 정도의 우연에서 비롯되었다. 영어를 사용할 있는 점이 매력이었고,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Communication Science 내가 하고 싶어하던 공부였다. 광고 회사의 디지털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하며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연구나 컨설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연인지 엄마의 선물인지 당시 한국을 여행 중이던 네덜란드인 남자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이제 네덜란드에 와야만 했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행정적인 것들을 처리하고 학교도 적응한다고 “아, 쉽지 않네.”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학교를 통해 거주 허가증 발급, 구하기 그리고 거주 등록을 진행해서 비교적 수월한 편이었음에도, Gemeente 에서 우편이 때면 머리부터 아파왔다. 나는 석사 과정 전에 Pre-Master’s 이수해야 했는데, 과정 특성상 집약적이고 건조한 것이 공부하기에 쉽지 않았다. 그리고 단골 가게를 찾고 자전거 바퀴를 굴려 보고, 이런 나만의 생활 반경을 만들어 가는 데도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 문득, 자리에 앉아서 둘러보니 새삼 감사한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교환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도 있고 한국 친구들도 있다. 어느 날엔 카드 결제만 되는 카페에서 현금을 쥐고 울상인 나에게 커피 값을 대신 내준 미모의 여인도 있었다. 또, 횡단 보도에서 먼저 건너 가라고 흔쾌히 멈춰 서주던 자전거도.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때 한국에 왔던 남자친구와 가족은 지금 나의 가족이자 언제든 찾아갈 있는 따뜻한 우리집이 되었다.

남자친구의 가족은 네덜란드 남부에 위치한 Noord-Brabant 주에 산다. 암스테르담에서 그곳에 때면, 서울에서 공부하다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어린 학생이 기분이다.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차를 즐겨 마시는데,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고 말씀드리자 꼬박꼬박 Albert Heijn 에서, Lidl 에서 아이스 커피를 사두시곤 한다. 부모님은 정말 순수한 관심과 내가 여기서 지내며 하고 싶던 공부를 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네덜란드 성장기를 엄마, 아빠처럼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신다. 여동생은 친구이자 쇼핑 메이트이다. 나는 남자친구를 만났지만 남자친구는 내게 새로운 가족을 선물해 주었다.

동안 년은 달랐다. 내가 처해있는 환경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나는 한국에서 결코 행복해질 없을 거라며 외국행을 결심했다. 그러자 네덜란드 친구가 어느 책에서 읽었다며, “Je komt jezelf tegen.”이라고 말해 주었다. 어느 나라에서든 어떤 환경에서든, 내가 결국 마주하는 것은 자신이다. 나와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가다 맡는 녹색 소세지 수프 냄새에 기분이 들뜨는 보니 봄이 오고있나 보다. 나는 어느덧 석사 과정을 시작했고, 생활도 제법 안정이 되어 아르바이트도 구했다. 네덜란드는 자신이 찾고 시도할수록 많은 것을 발견하고 성취할 있는 곳인 같다.

삶은 언제나 만들어져 가는 중이니, 조금 멀리 줄도 알고 그렇다고 온갖 불안과 걱정을 미리 쌓아두진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알콩달콩 행복하게 지내는 나날이 이어졌으면 한다. 오늘도 엄마의 온기는 공기 중에 몽글몽글 피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