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아닌 네덜란드로


미국이 아닌 네덜란드로

네덜란드에서 생활한지 벌써 4 년이 되어간다. 처음부터 네덜란드로 유학 계획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3 학년 당시 원서를 넣었던 대학은 모두 미국의 동부에 있는 대학들이었다. 고등학교 년간 지긋지긋하게 치룬 입시 관련 시험들과 쌓아온 다양한 외부활동 경험들은 모두 미국 대학입시 체제에 맞춰 차곡차곡 준비한 결과물이었고, 2016 초의 나는 지원한 대학들의 입시결과만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지원했던 다수의 대학으로부터 합격이라는 결과를 받았고, 장학금도 받을 있었다. 기뻤다, 분명. 하지만 의외로 결정의 순간 확신이 들지 않았다. 장학금을 포함하더라도 4 년동안 지불해야 하는 학비와 생활비 금액은 여전히 우리 가족에게 부담스러운 현실이었다. 비용보다 부담이 되면서 내가 전공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낼 있는 교육 환경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준비한 과정을 생각하면 아쉬웠지만, 합격한 대학들을 뒤로한 나는 결국 다른 해외 대학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미국, 호주, 영국 등의 영어권 국가의 대학을 제외하고 온전히 영어로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대학은 네덜란드, 독일, 홍콩에 있는 대학이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홍콩에 비해 유럽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면 졸업 다른 유럽 국가에서의 취업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준비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독일에 비해 네덜란드의 영어 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갖춰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만 네덜란드의 어느 대학에 지원해야 될지 고민이 되었다. 네덜란드는 주요 도시마다 universitiet(wo)들이 있는데 대학 네임밸류가 확실한 한국이나 미국과는 다르게 네덜란드는 대학교가 평준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더치 친구들에게 사실이지만, 네덜란드 내에서는 어느 대학의 학과가 유명한지 알려져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Utrecht 대학교는 medicine 이, Leiden 대학교는 법학이, 그리고 Amsterdam 대학교는 communication studies 알려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 있던 나는 그런 학과별 국내 인지도를 턱이 없었고, 고등학교 선배 네덜란드로 진학한 사례가 많지 않아서 정보가 별로 없었다. 비록 평준화 되어있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Randstad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헤이그, 우트렉) 지역에 위치한 대학들이 인지도가 높다고 느껴져 대학들 위주로 직접 학교 홈페이지와 이메일을 통해 알아보게 되었다.


라이든 대학 아너스 칼리지 (LUC) 일찍이 지원했던 미국 대학은 대부분 웰즐리 칼리지와 같은 Liberal Arts College 들이었다. 소규모 수업 방식과 토론 중심의 심화 교육 방식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덜란드에도 University College 개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반가웠다. 고민 끝에 라이든 대학교의 international honours college Leiden University College The Hague (LUC)로 진학을 결정하게 되었다. LUC 선택한 가장 이유는 헤이그라는 도시의 특성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때 자치법정 활동을 하면서 국제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평화와 정의의 국제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국제사법재판소,국제형사재판소,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법원 등의 국제법원들을 비롯해 T.M.C. Asser Institute, Clingendael 국제법 관련 센터들과 비영리단체가 다양하게 위치한 헤이그는 그야말로 국제법을 공부하려는 학생에게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실제로 LUC 에서 전공 선생님 대다수는 이와 같은 국제법원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거나 주요 국제 재판에 참여한 경험이 있으신 들이셔서 경험담을 많이 들을 있었다.

LUC 재학생들은 1 학년 말이 되면 6 가지 전공 하나를 선택할 있는데, 위에서 언급했듯 나는 국제법을 공부하기 위해 International Justice (BA)라는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전공분야를 선택하든 모든 커리큘럼은 Liberal Arts and Sciences: Global Challenges 라는 프로그램명에 맞게‘현대 사회의 주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초점을 두었고, 덕분에 전공은 서로 연관이 많이 되어있었다. 예를 들어 현존하는 사회 이슈들을 역사와 문화에 기반해서 해결하고 싶은 지, 국가 간의 인권과 안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법률이나 정책의 발전이 필요한지, 환경이나 음식자원을 지속 가능하게 공급하려면 어떤 정책이 효과적인지와 같은 주제들을 기반으로 짜여 있어서, 다른 전공의 수업을 들어도 완전히 낯설지 않았고, 여러 전공을 접목시켜 졸업 논문을 작성하는 유동적인 교육이 가능한 환경이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내가 유럽에서 공부하면 다른 나라로 여행도 많이 다니겠다면서 부러워했지만, 현실은 수면 부족에 커피를 달고 살며, 방학을 제외하곤 여행을 다닐 시간이 없는 유학생이었다. Semester 제도가 아닌 개의 block 제도로 운영하기 때문에 보통 학교라면 학기에 걸쳐 진행될 수업 과정을 8 안에 이수해야 했다. 수업 시작 백페이지가 넘는 자료들을 읽고 에세이와 조별과제, 발표, 모의법정 등을 매주 준비하는 상황이 익숙해져 가면서도 시험기간이나 졸업논문과 과제가 겹칠 정말 울고 싶었던 심정이었다. 하지만 졸업식날, cum laude 적혀 있는 졸업장과 그동안 이수한 38 개의 과목이 적힌 성적표를 보자 희열이 복받쳐 올랐고, 학부 초반에 작성한 에세이와 졸업 논문을 비교해보니 얼마나 성장할 있었는지 있었다.

흔히들 더치 사람들이 불친절한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타지에서 홀로서기를 하며 어려운 상황을 겪을 때, 더치 친구들은 귀찮을 법한 일들도 마다하지 않고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연말에 한국에 가지 못했을 집으로 초대해주어 친구 가족과 같이 새해를 보낸 적도 있고, 세금 관련 서류 작성을 gemeente 직접 전화를 걸어주며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Sinterklaas 같은 서로 시크릿 산타가 되어 직접 시와 선물을 교환하는 행사를 주최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비록 다사다난했지만 지난 3 년간 LUC 에서 만난 사람들과 경험들은 너무 따뜻했고 소중했다. 더치 사람들과 더치 문화에 대해 이해하게 것은 물론, 다른 유럽 국가에서 친구들을 만나면서 막연하게 생각했던 유럽 국가들의 문화와 가치관을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것을 즐거운 일이었다.

헤이그를 떠나 암스테르담으로

LUC 졸업 나는 네덜란드에서 석사까지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 원래는 졸업 실무 경험을 먼저 쌓고 싶었지만, 대부분의 인턴십이 석사 신분을 요구했기 때문에 지난 9 월부터 현재 암스테르담 대학교 로스쿨에서 LL.M 과정을 밟고 있다. 국제 무역과 투자법에 관련해 집중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선택이었다.

처음에는 네덜란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대학생활을 무조건 시작했지만, 이제는 바람이 불어도 자전거를 타고 더치어로 커피를 주문할 있을 정도로 나라에 많이 익숙해졌다. 앞으로 네덜란드에 얼마나 있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나는 3 년전 미국대학에서의 합격서를 거절하고 세계에서 가장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는 나라에 것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배운 지식과 쌓은 다양한 경험들이 훗날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길 기대하며 오늘도 자전거를 열심히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