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 숙녀 여러분"은 네덜란드에서 사라진 호칭?

Updated: Apr 6


네덜란드의 화장실에 이렇게 생긴 표지판을 자주 볼 수 있다. 바로 남과 여로만 구분할 수 없는 성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문화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 표지가 생기기 시작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예전에 썼던 글을 공유한다.

네덜란드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가장 익숙했던 호칭이 있다. 집 밖을 나서 이용하는 기차역에서 내 귀에 들렸던 나를 포함한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 '다무스 앤 히어런(Dames en heren)', 영어로 하면 '레이디스 앤 젠틀맨'이고 한국어는 왜 신사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사 숙녀 여러분'이었다.

기차역에서 사람들의 집중을 유도하기 위해 사람들을 통칭하던 '신사 숙녀 여러분'이라는 호칭은 이제 네덜란드에서 사라진다. 

NS(네덜란드 철도 회사)는 올해 12월 10일부터 공식적으로 승객이라는 호칭으로 부를 것이라고 한다. 단지 여성과 남성의 두 성만을 인정하는 명칭의 사용을 더 이상은 이 사회가 당연시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변화를 예고한 것이다. 

별 어렵지 않을 것 같은 호칭의 변화를 몇 개월 전에 고지하고 천천히 변화시킨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쪽에서 어떤 반응이 있을 지에 대해 꽤 긴 시간을 지켜본다. 사회적 합의는 이런 식으로 끌어낸다. 

그간 젠더(성별)를 표기하던 철도 패스에는 이미 표기가 사라진 지 꽤 되었다고 하고 승객들을 향해 부르던 호칭도 이제는 '친애하는 여행객들(beste reizigers)'라고 부르게 되리라는 것을 예고하는 뉴스를 보니 이제 이 문제에 대한 공론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생각인가 보다.

기사를 보니 런던 메트로 역시 이번 달부터 '신사 숙녀 여러분'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하니 단지 네덜란드에서 만의 변화는 아닌 듯하다. 

생각해보니 미국이 성별 호칭에 대해 민감하게 사회 공론화해 많은 변화를 이끌어온 선두 국가였다. 그리고 한국의 경험들을 떠올려보니 신사 숙녀 여러분이라는 말은 지하철이나 기차역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호칭에 있어서 네덜란드는 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네덜란드 사람들이 네덜란드가 아니라고 말하는 도시 암스테르담은 국가 네덜란드 전체의 변화보다 늘 보폭이 크고 빠르다. 젠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길을 제시하는 것 역시 앞섰다. 동성애를 인정하고 동성자들의 결혼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공적으로 인정했던 도시가 암스테르담이었으니 말이다.

암스테르담 시청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위해 성 중립을 위한 언어가이드를 배포했다.

예를 들면, 시청에서 보내는 수많은 레터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친애하는 여사/신사' 대신 '친애하는 거주자' 성소수자들을 위해 매년 열리는 '게이 퍼레이드'의 명칭을 '암스테르담 퍼레이드', '수로 퍼레이드'로, '어머니 아버지'로 따로 부르지 않고 '부모님'으로... 그리고 '소녀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가족에 의해 소녀로 명명되었다'는 표현까지. 결국 성을 결정하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가족에 의해 결정되어졌다는 것을 기록한다는 것이 암스테르담 시청에서 공적 기록에 남기겠다는 것이다. 동성자를 일컫던 '호모섹슈얼'이라는 표현도 이제는 '로즈(분홍색)'라는 표현으로 대신한다. 물론 공무원들에게 배포된 성중립을 위한 언어가이드 사용은 의무적이지 않다.

호칭과 더불어 변화의 움직임의 폭을 보니 예사롭지 않다. 공적 시스템의 변화에 대해 각 정당에서 당론을 발표하고 있고 정부 역시 이 문제에 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분위기다.

스무 개가 넘는 정당들은 서로 비슷한 의견을 내놓는 곳도 있지만 전통적인 보수당인 기독당(CDA)과 크리스천 유니온(CU)처럼 젠더 문제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당도 존재한다. 이들이 모두 모여 이 사안에 대해 정부에서는 어떤 식으로 안을 내어 놓을지 아직은 미지수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들 가운데 의식하지 못한 채로 사용되는 젠더 차별적 호칭, 그 호칭을 중립적인 호칭으로 부르는 것은 성 중립성을 지켜나가는 첫걸음이라고 해석한 것 같다. 

남과 여로만 규정된 젠더의 선택은 그 규정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이었을까! 

아시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며 내 앞에 다가와 '니하오'라 말하며 장난인지 비아냥인지 구분하기 힘든 얼굴을 한 네덜란드 사람들을 맞닥뜨렸을 때의 기분처럼 불쾌한 기분일까? 아니면 ???

남, 여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선택은 이 둘 중 어느 것도 아닌 사람에게는 둘 중 하나여야만 한다는 강요가 아니었을까! 

내게 아무런 느낌도 반감도 없이 들리던 '신사 숙녀 여러분'이라는 호칭이 누군가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막막함을 주는 호칭이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신문 기사를 보다 말고 지갑 속에서 철도 패스와 보험 카드를 꺼내 본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별 표시는 사라져 있었다. 

방송과 인터넷  곳곳에서 찬반 토론은 열띠다. 

"수 십 년을 사용하던 호칭을 바꿀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왜 이리 남자 여자라는 호칭에 민감한 지 모르겠다. 몇 명이나 된다고 정해진 것들을 탈선하고자 하는 것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드디어 이런 생각까지 할 수 있는 단계가 온 것인가? 나의 성 정체성에 해당하는 이름이 아니라 나를 제외하고 부른다고 생각했었는데..."

"환영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중립적 용어는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불편을 주는 일이 아니기에 잘 결정한 것 같다."는 등...

인터넷 댓글들은 다양한 의견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 가운데 내가 공감했던 댓글은 중립적인 용어는 그 누구에게도 위협을 가하거나 불편을 주는 일이 아니다는 댓글이었다. 

교육문화과학부 장관이 성 정체성을 구분 짓던 대중 화장실의 남녀 표지판을 바꾸는 사진을 메인으로 한 기사는 국가가 나서 사회적으로 구분 지었던 성 정체성에 대한 언어들과 행위들을 바꾸어 나가는데 힘을 쓰겠다는 뜻일 것이다. 이미 화장실의 표지판을 남녀만으로 구분하지 않고 중립적인 성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바꾸어 놓았다는 곳들에 대한 기사도 보인다. 기사의 말미에는 여타의 공공기관과 지방 자치제의 움직임은 어떤 지에 대한 취재도 읽을 수 있었다. 

젠더의 중립적인 호칭을 문제의식으로 불평하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변화를 시작할 계획은 없다고 발표한 공공기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미 공론화를 시작한 네덜란드 철도 회사의 발표덕에 네덜란드 전역에 젠더 중립성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7,8월은 암스테르담 수로가 축제의 도가니로 변하는 시기다. 오래전 게이 퍼레이드라고 말하는, 지금은 암스테르담 퍼레이드, 수로 퍼레이드로 이름을 함께 하는 축제로 들떠있다. 이 축제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뉴스는 어떤 생각을 하게 할까!

네덜란드의 트랜스젠더의 인구는 얼마나 될까! 자료를 뒤져보니 해묵은 자료뿐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네덜란드의 사회문화 재단에서 2012년 발표된 자료에는 15세에서 70세까지의 연령에서 약 48,000명 정도라고 한다. 네덜란드 인구 약 천 팔 백만에서는 지극히 소수다.

소수의 사람들도 인간으로의 존엄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임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이 얼마나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사회적인 약속을 만들어 내고 그 약속을 따르게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동성애를 인정했고 성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이 없는 나라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모든 사람들이 성소수자들을 고운 시선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또한 다수가 지금까지 지켜왔던 것들이 변화할 때 입을 피해가 있을지 없을 지에 대한 판단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나는 성 중립을 위한 용어들이 이 문제의 중심에 있는 소수를 제외한 다수들에게 해를 끼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별별 인간 다 챙기고 있네. 할 일이 그리없냐?"라는 댓글을 보는 순간,

'아!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었지.'싶다.


세상 어느 곳이든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보듬고 살아가는 것은 노력과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보다. 다양한 부분의 소수자를 위한 삶을 돌아볼 줄 아는 마음의 폭을 가진 나라가 네덜란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로 정착하기 까지 쉽지 않은 사회적 갈등이 있었음을 알게 되는 계기였던 사건이었다.